La cantina
라 칸티나. La cantina. 나에겐 잊을 수 없는 레스토랑이다.
1984년 겨울, 부모님은 수능을 본 딸을 을지로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데려가셨다.
그해 수능은 무척 어렵게 출제된 해였고 난 시험을 망친날 평생 처음 당하는 숨이 막히는 고통속에서 방안에 틀어박혔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답을 맞춰보니 나만 망친게 아닌 어려운 시험이었었다는걸 알게되었지만
결과는 어쨌든 내가 원하는 대학에 편안하게 합격할 만한 점수는 아니었다.
네남매.그당시에는 3명이나 4명의 형제자매들은 있던 시절이었고 늘 복닥복닥 거리며 살고 있었기때문에 혼자만 무얼 한다던지 어딜 간다던지 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네명이 움직이긴 어려워서 우린 둘씩 짝을지어 부모님 외출에 동반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나 혼자였다. 명동 톰보이에서 빨간색 A라인 코트를 사주시고, 그 예쁜 코트를 입힌 나를 데려간 곳은 라 칸티나.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 네명의 아이들을 모두 데려가기엔 부담스러우셨을꺼다. 아직도 그 간판이 기억난다. 지금 찾아보니 간판은 바뀌었지만 앤티크한 글씨체는 낯이 익다. 그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는것도 지금에야 알았다. 어쨌든 그 레스토랑은 나만 처음 가본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처음 가보시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첫 수능을 치른 집안의 첫째 딸을 수고했다며 큰 마음먹고 데려가신 것이다. 공부좀 한다 소리 듣던 딸이었던지라 (당연히)시험을 잘보고 기분좋게 데려가갈 계획이셨겠지만 그날은 좀 우울한 마음으로 갔었다. 시험을 못봤다지만 그래도 계획한데로 데려가자..하셨겠지. 어쩌면 그래도 설마 대학을 떨어지겠어?하셨을지도.
무엇을 먹었는지는 사실 기억에 없다.
우습게도 그날의 기억은 엄마가 드시던 스프안에서 껌을 발견한 기억뿐이다.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양복을 입고 서빙하시는 분에게 엄마가 물었다. '저기...죄송한데...음식안에 껌이 들어있는데요...'
그 서빙하시던 나이지긋한 분이 정말 정중하게 그건 껌이 아니라 치즈라고 얘기해 주셨고 엄마가 너무나 활짝(부끄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웃으시며 '아..저희가 이런 음식이 처음이라서요' 했더니 '아,그러실 수 있습니다.그러시는 분들 가끔 계십니다' 라고 전혀 우리를 민망하지 않게 대답해 주셨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당시엔 우리나라에 아직 피자라는 음식도 낯선때여서 모짜렐라치즈의 끈적임이 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피자는 나 대학4학년 되어서야 명동 피자헛에서 우리집까지 큰맘먹고 사가지고 갔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혹시 내안에 그때 라 칸티나의 기억이 민망함으로 혹은 부끄러움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되는걸까? 생각해보지만
절대 아니다. 난 고급레스토랑의 수준높으신 웨이터님의 고객을 배려한 매너있는 답변으로 기억하고 있을뿐. 오히려 난 치즈를 껌으로 알던 그날의 엄마를 떠올리면 항상 가슴이 뻐근하면서 눈물이 난다.
그날의 기억은 음식이 아니라, 나를 그당시 가장 멋진 곳에 데려가주신 부모님의 사랑이었기때문에.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나는 원하던 대학을 떨어졌고, 재수한다고 학원에 등록했다가는 그만저만한 대학에 들어가는걸로 또한번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린 딸이 되어버렸다. 라 칸티나에 가본건 우리 남매들중에서 나뿐일텐데. 한국 최초의 이탈리안레스토랑에 1984년에 가본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텐데.
우리 자매들이 모두 시집을 잘가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 그것으로 할 효도는 다 했다고 부모님은 말씀하시지만
몸이 불편하신 엄마,자주 못찾아뵈서 늘 죄송한 마음뿐. 조만간 엄마에게 다녀와야겠다. 엄마는 내가 라칸티나를 기억하냐고 물으면 아마 기억안난다고 하시겠지. 슬프게도 엄마의 기억은 이제 많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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